
대한민국 건축계에 ‘목재’가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불었던 한옥 붐이 전통의 멋을 되살리려는 문화적 향수였다면, 작금의 목조건축 흐름은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이라는 인류 생존의 과제와 맞닿아 있다. 전통의 지혜를 계승하되 첨단 기술을 입혀 미래 건축의 대안으로 떠오른 한국 목조건축의 진화는 매우 고무적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여 년은 우리 건축이 목재의 가능성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다. 2000년대 초 전남의 파격적인 지원과 김헌중 건축가 등의 노력으로 시작된 ‘생활한옥’ 보급은 한때 연간 1600여 동이 신축될 만큼 뜨거운 열풍을 일으켰다. 비록 정권 교체와 정책 변화로 부침을 겪었으나, 이 시기는 한옥이 불편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적 삶을 담아낼 수 있는 주거 공간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토대 위에 이명박 정부 시절 설립된 국가한옥센터(AURI)와 국토교통부의 R&D는 한옥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전통 방식의 고질적 문제였던 높은 건축비와 취약한 단열·기밀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설계·시공의 모듈화, 첨단 가공 기술(CAD/CAM) 접목을 통해 시공비를 40%까지 절감하고 성능을 현대화한 ‘신한옥(新韓屋)’ 기술은, 전통이 기술과 만나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성공적 사례다. 은평한옥마을 등은 이러한 기술적 성취가 일상 주거지로 구현된 결과물이다.
이제 우리 건축은 ‘스타일(한옥)’을 넘어 ‘재료(목재)’ 그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는 새로운 국면에 진입했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흐름 속에서, 산림청 주도로 목재를 핵심 구조재로 활용하는 현대 목조건축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목재는 철근이나 콘크리트와 달리 제조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적고, 성장 과정에서 흡수한 탄소를 건물 내에 장기간 저장하는 유일한 건축 자재다. ‘탄소중립 실천을 위한 목조건축 활성화 법안’ 추진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시의적절한 행보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과거 경북 영주의 5층 목조건축물을 넘어, 작년 대전에는 국내 최고층인 7층 규모의 목조빌딩(산림복지종합교육센터)이 들어섰다. 이는 구조용 집성재(CLT) 등 공학목재 기술을 통해 목조건축이 화재와 지진에 취약하다는 편견을 깨고 중고층 건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실증하는 이정표다. 나아가 13층 이상의 고층 목조건축을 위한 R&D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우리 목조건축 기술이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옥의 정서적 가치와 현대 목구조의 기술적 합리성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 한옥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비움의 미학’을 가르쳐 주었다면, 현대의 고층 목조빌딩은 그 정신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도심 속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정책 지원과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공공건축물부터 선도적으로 목재 사용을 늘리고, 관련 규제를 과감히 정비하여 민간 시장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국산 목재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가공 산업 육성도 병행되어야 한다.
과거의 한옥 붐이 남긴 자산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로 무장한 ‘K-목조건축’이 탄소중립 시대를 이끄는 새로운 주거 표준이자 미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