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양산림항공관리소장 김호근
겨우내 얼어붙었던 계곡물이 소리 높여 흐르고, 나뭇가지마다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가 기지개를 켜는 희망의 계절, 봄이 찾아왔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은 따스한 햇볕을 찾아 산으로 들로 나서며 봄의 정취를 만끽합니다.
하지만 우리 함양산림항공관리소 대원들에게 이 아름다운 봄은 마냥 반가운 손님만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먼저 봄을 맞이하는 설렘보다는, 메마른 대지에 거칠게 불어오는 '양간지풍'의 위협 속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긴장감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꽃구경을 떠나는 설레는 바람 소리가 우리 대원들에게는 잠을 설칠 만큼 무거운 경고음으로 들립니다.
다시금 '산불과의 전쟁'이라 불리는 봄철 산불조심기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매년 이맘때면 반복되는 위기 앞에 서지만, 특히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사실 지난해 우리는 너무나 가혹한 봄과 여름을 보냈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은 대형 산불을 불러왔고, 뒤이어 쏟아진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산사태라는 또 다른 비극을 낳았습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2016~2025년) 평균 산불 발생 건수는 529건이며 피해 면적은 14,470ha에 달합니다. 하지만 기후 위기가 심화된 최근 몇 년 사이 그 규모는 급격히 대형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산불 피해 면적은 전국적으로 105,085ha에 이르며, 10년 평균대비 7.3배에 달합니다. 이는 우리 산림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산불의 원인으로 최근 10년 통계를 보면 입산자 실화(30%), 불법소각(22%), 담뱃불 실화(7%), 건물화재 비화(7%) 등으로 발생합니다.
즉, 우리가 조금만 더 조심하고, 조금만 더 경각심을 가졌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가 절반을 넘는다는 점입니다. "설마 나 하나쯤이야", "잠깐 태우는 건데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수백 년 된 숲을 태우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불씨가 됩니다.
우리 함양산림항공관리소는 관할 지역인 함양, 거창, 산청 등 수려한 산림 자원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비상 대기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헬기로 물을 붓는 것보다 더 강력한 진화 수단은 바로 여러분의 '예방'입니다.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에서 화기를 내려놓아 주시고, 삶의 터전 곁에서 작은 불씨라도 피우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가 함께 지킨 숲이 훗날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돌아올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올봄, 부디 이 푸른 약속에 동참해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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