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림인력개발원 교수 공학박사 정 성호
가을이 깊어간다. 벌써 아침이면 몸속으로 스며드는 냉기에 옷깃을 여미게 한다. 높은 산에서부터 물들여져 내려오던 단풍은 어떤 곳은 이미 고샅에까지 와 있다.
길가의 은행나무도 잎을 노랗게 물들이며, 긴긴 겨울나기 채비를 위해 서서히 나뭇잎을 떨구어 몸무게를 줄이고 있다. 노란 은행잎을 갈피에 끼워 편지를 보내고픈 계절이다.
잎이 넓어 논란이 더러 있으나 일반적으로 침엽수로 분류되는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으로 1과 1속의 외로운 족보를 이루고 있다. 열매가 살구 씨와 닮았지만 흰 빛이 난다고 하여 은행銀杏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이 나무의 잎이 오리발 같이 생겼다고 하여 압각수(鴨脚樹)라고 하며 그 밖에 공손수(公孫樹) 등으로도 쓴다.
서양에서도 은빛 나는 살구라는 뜻의 Silver apricot라고 하며 금발 소녀의 머리카락이란 뜻으로 Maiden hair tree라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노란 잎의 모양이 마치 귀여운 금발 소녀의 뒤로 묶은 머리를 연상하게도 한다.
예부터 은행나무로 만든 밥상은 궁중에서나 또는 고관대작들이나 사용할 정도로 귀하고 값이 비쌌는데 지금도 일반 가정에서는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은행나무 자체가 시장재로 유통되고 있지 않으니 제품이 생산되어 거래되고 있을 리가 없다.
대부분의 나무들이 그렇지만, 우리가 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만 하더라도 해송,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섬잣나무 등 가깝고 먼 일가친척이 많지만 은행나무는 단 1종이 외롭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일가친척이 없는 외로운 나무인 셈이다.
종자가 무거워 스스로 후손을 퍼뜨리는 데 어려움이 있어 번식력이 매우 약한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은행나무가 용재로서는 우수하다 해도 시장재로서 대량 유통이 안 되는 것은 바로 이같이 번식력이 약한 취약점 때문이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중 수명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조선조 5백년 역사의 2배가 넘는 1천년 이상을 살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 살아남은 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식물 중의 하나로, 함께 살던 많은 나무들이 화석으로 발견되고 있어 화석식물로도 불리며 겉씨식물 가운데도 아주 원시적인 미진화 식물이다.
은행나무 목재는 색깔이 우아한 황백색으로 그다지 무겁지 않으며 나뭇결이 곧을 뿐 아니라 질감이 곱고 연하며 비틀림이 적어 가공성이 우수하다. 특히 표면마무리성이 우수하고 윤이 나며 내구성과 수분이나 습기에 대한 저항성이 강해 밥상의 재료로서는 최상급으로 꼽는다. 또 바둑판이나 장기판재로도 많이 쓰인다.
건조가 잘 되며 절삭가공성과 도장성이 우수하여 칠기의 소재나 조각, 불교용품 등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은행나무는 불교용품으로도 쓰이므로 신성시하여 함부로 베면 재앙을 입게 된다는 속설이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은행나무 목재는 내장재, 고급가구재, 연필재 등으로도 쓰이는 등 용도가 다양하다.
부채꼴 모양의 잎은 예부터 민간에서 고혈압, 당뇨병, 위경련, 진해제 등으로 이용되어 왔는데 최근에는 이 잎에서 성인병 치료에 효과가 큰 특수한 성분이 추출되어 상품화된 약으로 유통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산 은행나무의 잎이 약효가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져 약재원료로 수출되고 있다. 열매도 식용한다.
은행나무의 체내에는 특유한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병에 잘 걸리지 않을뿐더러 해충도 접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공해에 강하고 수형도 아름다워서 도시의 가로수나 공원수로 심기에도 적합하다.
이 가을에, 목재에서부터 잎, 열매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은행나무는 길가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서정으로 다가온다. 지난여름 그다지도 싱그럽게 번들대던 때깔을 접어두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은행나무 잎의 노숙한 기품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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