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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에서 심신을 씻다 < 김정길 수필 연재 시리즈 1>

  • 김정길 기자 기자
  • 입력 2010.03.03 21:36
  • 조회수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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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쇄원에서 심신을 씻다  < 김정길 수필 연재 시리즈 1>

 행촌수필문학회 명예회장, 전북수필부회장, 수필과비평작가회의 부회장  

삼백오십 리 전남의 젖줄 영산강을 잉태한 추월산과 담양호를 품은 담양은 누정(樓亭)문화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기고 있다. 그리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대쪽같이 맞섰던 올곧은 선비정신의 대명사로 여기는 대나무가 천국을 이루었다. 예부터 담양은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들이 으레 낙향해서 산자수려한 곳에 누정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을 양성했던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풋풋한 봄빛으로 물들던 어느 날 전주에서 문우들과 조선시대 선비들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있는 소쇄원을 찾았다. 들머리에서 울창한 대숲과 대나무울타리 터널을 지켜왔던 무지개다리 형상의 홍교(紅橋)는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건만 복원할 기미조차 안보여 안타깝다. 예부터 선조들은 홍교는 사찰의 일주문, 향교의 홍살문처럼 섬기며 그곳을 지날 때마다 마음을 경건하게 가지라는 상징물로 삼았기에 더욱 애착이 간다.

 나모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하늘을 찌를 기세로 쭉쭉 뻗은 울창한 대숲 터널을 걷노라니 불현듯 윤선도의 오우가의 한 대목이 뇌리를 스쳤다. 때마침 대숲에서 불어오는 선들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는가 싶더니, 골짜기로 졸졸 흐르는 개울물소리와 산새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는 소쇄원이 버선발로 쫒아 나와서 세속에 찌든 심신을 맑게 어루만져 주었다.

 “무릇 은자(隱者)는 지조와 절개가 세속에 빼어나는 풍모가 있어야 하고, 마음이 씻은 듯이 맑고 깨끗하여 홍진(紅塵)을 뛰어넘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1519년)가 억울하게 세상을 뜨자, 양산보가 스스로 벼슬을 내던지고 창평에 은거하면서 별장을 짓고, 중국 남북조시대 공치규의 <북산이문>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해서 소쇄원(瀟灑園)이라 이름을 짓고 당호도 소쇄공이라 했다. 모름지기 숨어 사는 선비는 큰 학식과 덕망을 갖추고 있어도 씻은 듯이 맑고 깨끗해야 한다는 의미다. 속세와는 거리를 두고 숨어 지내는 사람의 마음을 비유한 조선시대 선비의 지혜가 번득인다. 문득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서 ‘이른 아침마다 소쇄해라.’라고 했던 말씀이 떠올랐다.

오솔길로 접어드니 긴 돌담이 병풍처럼 둘러 처진 초가지붕의 작은 정자가 모습을 나타냈다. 바로 48영 중 제1영으로 일컫는 소쇄정으로 봉황이 깃든다는 벽오동 한 그루가 손님을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귀빈을 봉황에 견주어 시인묵객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대봉대(待鳳臺)란 현판을 걸어 놓았다.

예부터 소쇄원은 환벽당, 식영정과 더불어 한 마을의 세 명승지라 하여, 일동삼승(一洞三勝)으로 일컫는 곳이다. 일동삼승에 매료되어 정자문화의 텃밭을 일구었던 송순, 임억령, 김인후, 김성원, 정철 등이 주옥같은 시를 남겨 오늘날 후학들에게 교훈이 되고 있다.

중국 ‘효경’에 등장하는 애양단(愛陽壇)에서는 효도의 상징인 사시사철 푸른 모습의 동백나무가 방문객들에게 효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오곡문(五曲門)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가 무이구곡 중 오곡에서 무이정사를 경영하며, 후진을 양성한데서 연유했다. 그 아래로 명경지수가 흐르며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했다. 오곡담 아래로 흘러나온 물이 암반에서 다섯 굽이를 돈다 해서 오곡문이라 한다는 설도 있다. 계류를 가로지른 외나무다리 옆 살구나무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예나 지금이나 그 기개가 씩씩한 반면, 장수의 상징으로 소쇄원의 역사를 대변해 주던 천년송은 자기관리에 실패한 중병환자처럼 나뭇잎이 빨갛게 말라 죽고 있어 머지않아 생명줄을 놓을 것 같다.

제월당(霽月堂)은 주인이 거처하던 공간으로 ‘비 갠 하늘에 밝게 떠오르는 달’에 비유해 양산보와 더불어 호남의 대표적 문인으로 일컫는 김인후가 소쇄원의 48경치를 예찬한 글귀를 벽에 붙여놓았다. 광풍각(光風閣)으로 내려가는 작은 문은 높이가 너무나 낮아 무심코 들어가다가는 머리를 부딪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예를 갖추라는 무언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내 머리에도 불똥이 튀었다.

광풍각은 소쇄원의 중심을 이루며, 왼쪽은 폭포, 마루 앞엔 계곡, 건너편엔 물레방아가 청아한 소리를 냈다. 송나라 명필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에 대한 인물됨을 애기한 ‘비온 뒤에 해가 뜨고 청량한 바람이 분다’는 글귀를 인용해 광풍각으로 명명한 사랑방이다. 우암 송시열이 쓴 제월당과 광풍각 현판에서는 옛 선조들의 정취가 물씬 풍기며, 선비들의 심상이 오롯이 묻어났다. 광풍각 뒷동산을 도연명의 무릉도원으로 재현하려는 듯 복사동산이라 이름을 지은 소쇄공의 해학과 풍류를 엿볼 수 있었다.

풍수지리로도 소쇄원은 배산임수의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길지였다. 남으로는 호남의 명산 무등산이 지켜주고, 뒤로는 까치봉과 장원봉이 비바람을 막아주며, 정원 앞엔 영산강의 지류인 증암천이 생명수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1만4천 평의 굴곡진 산자락에 자연미를 살려서 축대를 켜켜이 쌓아 정자를 짓고, 선비의 표상인 대숲과 송림이 어우러진 동산에 철따라 꽃을 피우는 화초를 가득 가꾸어 지상낙원을 꿈꿨다. 그리고 맑은 계류와 자연폭포, 물레방아가 연출하는 인공폭포 등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진 조선시대의 민간 최초의 별장이었다. 더구나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15대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이 잘 관리해 온 것도 자랑거리요, 본받을 점이다.

올곧은 조선선비로 속세를 떠나 초야에 묻혀 살며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 소쇄원의 48영을 주옥같은 시로 예찬했던 김인후, 양산보의 외종형으로 면앙정시단을 이루어 기라성 같은 시인묵객들과 더불어 가사문학을 꽃피웠던 송순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죽림처사(竹林處士)들을 떠올리며 소쇄원에서 옷깃을 여몄다.

 비록 은자(隱者)는 아닐지라도 열 번의 소쇄원 방문을 통해서야 비로소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을 깨달으며 심신까지 씻을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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